형사에서 민원봉사실로 좌천된 형사들의 좌충우돌 범죄 소탕 작전. 현재 상영 중인 영화 <걸캅스>는 단순한 스토리에 대사를 활용한 개그로 점철된 오락영화가 분명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전면에 남성 배우가 아닌 여성 배우들이 섰다는 것. 그간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한국 형사물, 버디물에서 이 같은 설정 변화는 분명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박미영 형사 역의 배우 라미란은 연기경력 20여 년 만에 첫 영화 주연을 맡았고, 그의 시누이이자 열정 넘치는 신입형사 조지혜 역의 이성경 역시 모델에서 배우로 영역을 넓힌 이후 본격적인 주연을 처음 맡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를 적절한 재치와 유머로 풀어간 이 영화에 이성경은 “시나리오를 킥킥거리며 봤다. 생각 없이 신나게 웃고 싶은 분들에겐 딱인 영화”라며 밝은 표정으로 소개했다. 

유쾌한 현장

이성경의 말이 일리 있다. 성별만 제외하면 <걸캅스>는 그간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말장난과 상황 개그로 가득 차 있다. 다소 과장된 톤, 어설픈 행동을 일삼는 주요 캐릭터가 이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여성 버디물이 아직 낯설다는 인식에 대해) 아마 아직 많이 보여지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물도 나오고 더 다양한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뭐 하나가 잘 되면 유행 타듯이 쏠릴 때도 있지만 이왕이면 다양한 장르의 (여성)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소재를 다루긴 했는데 그걸 약간 비틀어서 표현했잖나. 영화를 웃으며 보시다가 돌아가실 때 경각심을 갖는 정도면 좋겠다. 분명 가벼운 범죄는 아니니까.

현장에선 남자 선배들과 (일 할 때) 별 다른 걸 못느꼈다. 다들 털털하셨고 배우들끼리 단합이 잘 됐다. 라미란 선배도 첫 주연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면서 하는 방법을 찾아가시더라. 저도 선배를 의지하면서 갔다.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 끝나고는 같이 노래방 가서 노래도 부르고, 저랑 최수영(극중 민원봉사실 직원 장미 역) 언니는 미미시스터즈처럼 노래 부르며 춤도 췄다(웃음).”

그렇다고 가볍게 접근한 게 아니다. 평소 개그본능 등 숨은 끼를 “<걸캅스>를 통해 발산하며 대리만족을 느꼈다”면서도 이성경은 “다큐멘터리나 여러 형사 영화를 보며 캐릭터를 연구해갔다”고 숨은 노력을 언급했다.
 

 
“형사라고 해서 무조건 거침없진 않더라.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더 응원하게 됐다. 제 입장에서는 직접 웃기거나 망가지는 캐릭터가 아니기에 미란 선배의 대사를 잘 받는 게 중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이 넘치다 못해 많이 싸우고 다녔던 모습으로 지혜의 전사를 만들어 갔다. 동시에 선배로서 미영을 동경하고 있는 마음도 있었다. 

감독님은 <델마와 루이스>처럼 그런 호흡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 영화 처음 제목도 <미영과 지혜>였다(웃음). 감독님이 예스와 노가 분명하시더라. 저로선 좋았다. 현장에서 제가 긴장하며 준비한 감정신에서는 굉장히 빨리 오케이를 주셨고, 부족한 부분에선 테이크를 여러 번 가기도 했다.”

이성경의 슬럼프… “고민하며 극복 중”

이 대목에서 이성경은 연기적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사실을 고백했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2016) 등으로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던 직후였다. 스물아홉, 아홉수를 겪었던 것일까. “<걸캅스> 찍기 전까지 마음이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감독님은 제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주문만 하셨다. 근데 그 순간엔 전 제 마음이 대체 뭘까 헤매고 있었다. 뭔가 부족하고 잘 모를 땐 진심을 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는데 그 진심을 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하더라. 모델 때도 그랬고 전 감성으로 일한 사람인데 갑자기 이성적으로 생각이 많아지니 스스로 마음이 묶여버리고, 자존감이 낮아지더라. 사람들의 칭찬도 칭찬으로 안 들리고.

그때 (함께 출연한) 성동일 선배가 ‘성경에 이거 너의 영화야’ 툭 한마디 하시더라. 그 말씀에 느낌이 확 달라졌다. 제가 마음적으로 힘들었던 걸 느끼신 것 같았다. 또 다른 선배는 제가 한창 힘들었을 당시 ‘고민하는 배우가 더 성장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땐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야 그 말씀을 좀 알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절 더 못 하게 할까 걱정했었거든.”

이제 서른을 넘긴 그다. 2008년 모델로 데뷔한 이후 연기와 무대를 병행하고 있는 이성경은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멋있고,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멋있지 않나”라며 본분에 대해 되새김 하고 있는 상태를 전했다. 얼마 전 열린 서울패션위크 무대도 섰던 그는 “모델 일은 즐거운 일이라 참여하는 것 같다”며 “후배들의 앞을 혹시 막고 있는 거 아닌지 그런 생각도 하지만 우선은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마음으로 했다”고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모델 일을 하면서는 제 예전 모습이 생각나서 반갑고 즐겁다. 연기자로선 뭔가 더 조심하고 움츠리게 되는데 무대에 서며 동료들과 얘기할 땐 원래 제 모습을 추억하게 된다. 일단 연기자로는 좀 더 신뢰를 드리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 모습으로 좋은 여운을 남기는 사람이고 싶다.

연기를 시작한 게 사실 갑자기였거든. <괜찮아 사랑이야> 김규태 감독님의 따님이 제 팬이었던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셔서 뵀는데 제가 연기 경험이 전무하다는 걸 말씀드렸다. 제겐 김규태 감독님, 노희경 작가님이 은인이다. 배우로 태어나게 해주셨으니 말이다.”
 

 
새로운 목표 

모델 데뷔 전까지 이성경이 10년 넘게 피아노를 치며 피아니스트를 꿈꿨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종종 피아노를 쳐본다면서도 그는 “아쉽지만 미련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로서 제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더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모델 할 때도 연기에 대해선 손사래 치던 사람이었다. 농담처럼 누군가 말해도 어유 어떻게 해요! 이러던 저였다. 피아노는 아직 집에 있다. 아직도 피아노를 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엄마가 환히 웃으시면서 ‘뭐 사러 가자’ 이러셨거든. 단번에 피아노임을 알았지(웃음). 그 피아노는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갖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안방에 있다(웃음). 

배우 일만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일단 연기를 꾸준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 제가 즐겁게 할 수 있으면서도 작품에 피해가 안 된다면 도전하고 싶다. 전 몇 개월 참여하지만 누군가는 그 작품을 수년 전부터 준비했을 거잖나. 귀한 시간을 제가 함부로 망치면 안 되지. 재밌게 할 수 있더라도 책임감 생각하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지를 항상 체크하려 한다. 꿈과 별개로 저만의 작은 비전이 있다면…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일단 그러기 위해선 내가 건강해야겠지. 주변 사람들이 손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제 바람은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