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방탄소년단의 월드 투어 ‘스피크 유어셀프(SPEAK YOURSELF)’의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 콘서트에 다녀와서 올리는 후기입니다. 

사실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건 올해 초였어요. 한국에 있는 오빠가 ‘방탄소년단을 아느냐?’ 묻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파리에 살면서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줬어요. 다음 날 아침, 카톡으로 20개가 넘는 유튜브 링크를 받았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전설을 드디어 접하게 된 거죠. 

자신들의 노래를 직접 쓰는 아티스트라는 것도, 선행을 해왔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얼마 후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 페르소나'(Map of the Soul – Persona)의 수록곡을 들었고, 가사를 꼼꼼히 읽었어요. 저는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그보다 더 나은 한국 대중음악은 없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믿음 아래 케이팝을 듣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수록곡들은 음악도 하나하나 좋지만 특히 가사가 아름답더군요. 
 

 
그러고 2019년 6월, 소문으로만 듣던 BTS 열성팬들을 체험하기 위해서 월드 콘서트 ‘스피크 유어셀프’에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공연 열흘 전날, 거금 70유로를 투자했습니다. 6월 7일은 2019 여자 월드컵 ‘한국 대 프랑스’ 경기가 있는 날이라서 8일자로 예매했습니다. 자리는 경기장 맨 윗줄 제일 저렴한 자리에요.

BTS를 알게 된 지 얼마 안되는 40대 아줌마의 팬심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경기장 바닥에 있는 객석에서 공연을 보려면 200~300유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연 열흘 전에도 자리가 있었냐’면서 사람들이 놀라는 눈치였어요. 영국 공연은 예매 48시간 만에 매진이었다고 하고요. 

프랑스에서 만난 BTS

프랑스에서 BTS라고 하면 사실 ‘brevet de technicien supérieur’의 준말로 ‘고급 기술자격증’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불어로 ‘베떼에스’라고 발음합니다. 한국 보이스 그룹 BTS를 ‘베테에스’라고 발음했더니 어느 ‘아미’가 교정해줬어요. 프랑스에서 ‘베테에스’라고 발음하지 않고 영어식으로 ‘비티에스’라고 발음한다고.

여기서 ‘아미'(Army)란 BTS를 사랑하는 팬들을 말합니다. 첫날 파리 공연 이후에 <르몽드>에는 “아미는 동아리가 아니다 식구다 – 파리 스타디움을 팬으로 다 채워“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어요. 

티켓을 사고 나서 프랑스 친구에게 “파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하는 한국 가수의 공연 보러간다”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며 물었어요. 대체 어떤 가수길래 그 넓은 스타디움에서 하느냐고. BTS라고 했더니 ‘들어보지도 못한 가수’라길래 “지난해 빌보드 차트 1위를 3번이나 한 한국 남성 그룹이다, 더군다나 얘들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를 하는 가수라서 그 의미가 더 크다”라고 설명했어요. 그랬더니 BTS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게 자료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날 오후 8시 공연인데, 입장은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됐습니다. 기념품 파는 부스는 줄을 나래비로 섰어요. 저는 그날 파리에서 한국어 과외를 하고 오후 7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가르치는 아이의 어머님께서 ‘오늘 좀 더 일찍 와라, 입장하는 줄이 길어서 더 일찍 출발해야 한다’라고 문자를 보내왔어요. 그 집 아이도 첫날 공연에 갔다 왔던 아미였던 지라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죠. 

6시 30분에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시계를 보더니 ‘이제 어서 출발해야 된다’면서 저를 황급히 보내주더라구요. 아이의 아버님께서는 공연장에 어떻게 가면 되는 지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셨어요. ‘공연장에 들어가는 가방의 크기는 20X30cm 크기여야 하고, 우산은 반입할 수 없다’는 상세한 정보도 어머님께서 알려주셨어요. 그 집 식구들은 그날 저녁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러 같이 가족나들이를 할 거라면서 BTS 공연 잘 보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환송을 받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파리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13호선을 탔는데 아미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승강장에 가득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생드니 뽁드 드 파리’ 역에서 내리니까 출구가 어딘지 찾아볼 필요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경기장이 어디냐고 길을 물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였습니다.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경기장이 보였어요. 우리 아들의 소원이 저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는 건데, ‘축구장에서 과연 공연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클래식이나 뮤지컬 공연은 여러 번 봤어도 대중가수의 공연을 보러가기는 생전 처음이었어요. 

제가 도착한 게 오후 7시였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어요. 기념품 부스는 여러 개가 되는데도 각 부스마다 줄이 길었고, BTS의 노래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추는 아미들도 있었어요. 분위기가 벌써 핫(Hot)한 게 느껴졌습니다. 날씨도 더웠어요. 길에서 한 아미가 BTS 사진을 인화해서 무료로 나눠주고 있길래 저도 하나 달라고 해서 받고 자리를 찾으러 갔어요. 
 

     

 
경기장이 매우 높아서, 들어서는 순간 무슨 UFO 우주선에 탑승하는 기분이었어요. 클래식 공연장은 공연 시작 30분 전에 오라고 해도 맨날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BTS 공연에 온 팬들은 공연 1시간 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걸까요? 신기했습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노래하는 프랑스인들

저는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케이팝, 혹은 팝 장르의 팬들은 방황하는 10대들, 혹은 코나 귀에 피어싱을 하고 머리는 염색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파리 경기장을 가득 채운 아미들은 10대뿐 아니라 3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고, 제가 따로 만나본 프랑스 아미들 중에는 40대, 50대도 있었어요. 펑크 스타일을 하고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다들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아니, 이럴 수가!  

물론 실제와 다른 선입견이었지만, 방탄소년단의 첫 앨범에 수록된 ‘노 모어 드림스'(No More Dream)의 뮤직 비디오를 보시면 제 편견이 무리한 생각은 아니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무대 화면에는 뮤직 비디오가 돌아가고 있고, 소리는 안 나오는데 아미들은 동영상에 맞춰 알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것도 다 한국어로! 한국어로 이렇게 유창하게 노래를 잘하는 프랑스인들을, 그것도 단체로 본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요. 

 

 

 
어느 팬들이 생일축하곡을 부르길래 어느 멤버의 생일인가 했는데,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달이 6월이라는군요. 정확히는 6월 12일로 방탄소년단의 6번째 생일이 가까웠던 거죠. 여튼 제가 앉은 좌석이 높아 경기장 뒤로 넘어가는 해도 보이고,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드디어 무대에 불이 꺼지고, 분위기 잡는 멋진 음악이 나오면서 무대 앞에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포즈로 앉아서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새 앨범 <페르소나>에 실린 곡 ‘디오니소스’로 공연을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새 앨범에 실린 노래가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 순식간에 새파랗게 젊은 여성팬들과 함께 ‘와~!!!’ 하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이틀간 16만 명의 팬들을 열광시킨 무대

콘서트 조명은 당연하고, 영상 처리, 관객석 위로 날아다니는 특수효과 등 무대가 굉장히 세련되서 운동경기장이라는 사실을 싹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세렌디피티’를 부를 때는 지민이 커다랗고 투명한 방울 속에 들어있는 채로 등장하는데, 지민이 손으로 방울을 톡 치니까 단숨에 폭 사라지는 마술도 부렸어요. 이렇듯 환상적인 무대와 조명, 사운드, 그리고 8만 명의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로 2시간의 공연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특히 응원봉이 참 재미있었어요. 그걸 어디서 구했나 싶던데, 그냥 불만 켜지는게 아니라 색깔이 바뀌더군요. 특히 앉은 객석별로 파란색, 보라색, 초록색 등 단체로 응원봉의 색이 순식간에 바뀌는 게 신기했어요. 

공연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었는데,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어요.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돌림으로 외치거나 파도타기를 하면서 질서정연한 분위기를 유지했어요. 

경기장 뒤로 노을이 지고, 깜깜한 밤이 되어 하늘에서 별이 반짝일 때쯤 공연이 끝났습니다. 일곱 명의 스타들이 돌아가면서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이 왔어요. 한-불 통역으로 이뤄졌는데, 그 큰 스타디움에서 우리말로 들리는 메시지가 얼마나 큰 감동으로 전해졌는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제가 파리 시내 갸르니에 오페라를 방문했을 때 얘기를 잠깐 해드릴게요. 1996년 1월에 유럽 배낭 여행을 나와 갸르니에 오페라 건물을 구경하고 나서 내부 천정에 그려진 샤갈의 그림도 볼 겸 롤랑 쁘띠 발레단의 공연을 보기로 했어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잖아요? 3개 국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불어, 영어, 그리고 세 번째 일본어로 나왔는데, 그때 일본인 관객들이 너도나도 ‘와아…!’ 하는 감탄을 했던 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해요. 

그 넓은 파리 스타디움에서 한국 가수가 한국어로 답례를 할 때,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파리 오페라에서 일본인들이 느꼈던 감동에 비견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수들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어로 답례를 한다는 게 자국민들에게도 긍지를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거기에 더불어 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는 외국생활의 한스러움까지 달래주는 곱절의 감동이었어요. 

불어 통역이 나오면 여지없이 아미들이 함성으로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7명이 각자 준비해온 불어 멘트가 있더군요. 지민은 첫날 불어 멘트를 했는데, 둘째 날은 ‘준비해온 불어가 있기는 하지만 제 진심이 전해졌으면 해서 오늘은 한국말로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방탄소년단의 진심을 느끼기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한 아미들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시지요? 

방탄소년단 지민이 두 번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준비해온 불어가 있기는 하지만 제 진심이 전해졌으면 해서 오늘은 한국말로 하고 싶어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여러 명의 프랑스 아미들이 “한국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한 계기가 됐다”라고 제게 말하더군요.

공연의 끝곡이자, 월드투어의 마지막 곡은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하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 제가 <맵 오브 더 소울>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소우주’였어요. 파리 스타디움은 8만 개의 별들도 가득했습니다. 제 바로 뒤에 수탉같은 젊은 10대가 있어서 빽빽 소리를 지를 때마다 깜짝 깜짝 소름끼친 걸 빼면 무척 만족한 경기, 아니 공연이었어요. 

방탄소년단 여러분, 한국에 잘 돌아가셨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프랑스 아미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내년에 꼭 파리에 다시 와주세요. 멋진 공연, 세련된 무대 매너, 그리고 한국인에게 긍지를 불어 넣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