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760만 관객(6월 14일 현재)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SNS에서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영화평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영화의 자세한 내용이 많이 공개되지 않은 건, 감독부터 나서서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고 했고 관객들이 이를 존중했기 때문인 듯하다. 영화에서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근세 역의 박명훈 배우도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본 기자도 스포에 대한 부담을 덜은 만큼, 이번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구체적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앞서 작성한 <‘기생충’ 본 한 노부부의 대화… 절망감이 밀려왔다> 기사가 영화에 대한 거시적 분석이었다면, 이번에는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상징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다.
 
수석, 영화의 시작이자 끝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서 소품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에게 제 나름대로의 의미와 상징을 부여한다. 따라서 봉 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극 전체를 꿰뚫는 상징을 발견하곤 하는데, <기생충>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수석이었다.
 
영화 초반부, 친구 민혁(박서준)은 기우(최우식)에게 박 사장 네 과외를 부탁하면서 행운과 재물이 따른다는 수석을 건넨다. 이후 기택 가족은 정말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과정이야 어떻든 네 가족이 모두 박 사장 네 취직해 돈을 번다. 그러니 기택 가족에게 수석은 행운의 상징이다. 비가 와서 집이 떠내려가도 기우는 수석을 놓지 않는다.
 
이 수석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수석이 갖는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수석은 말 그대로 돌이다. 과거 돈깨나 번 사람들이 장식을 위해 돌을 ‘수석’이란 이름으로 집에 들여다 놨지만 본질은 쓸모없음이다. 즉, 쓸데없는 돌을 돈을 주고 구매함으로써 나의 부를 과시하는 용도이다.
 
그러나 이런 수석은 세월이 흘러 사회적으로 계급이 고착화되면서 의미를 잃는다. 계급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와 달리 현 시대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 더 이상 수석을 보여주며 자랑할 필요가 사라졌다. 영화 속 박 사장 네를 떠올려보자. IT기업가로 성공한 그의 저택에는 수석 같은 잡다한 것들이 들어설 공간이 전혀 없다.
 

 
따라서 민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수석을 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급 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에는 수석이 제 기능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민혁은 이제 할아버지의 말을 더 이상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미 구조적으로 부자인 그에게 수석은 지나간 시대의 말도 안 되는, 거추장스러운 화석일 뿐이다. 기우에게 선심을 쓰면서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데 민혁과 달리 기우는 그 수석을 신주단지 받들 듯 모신다. 아직 수석으로 상징되는 계급 상승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급 사다리가 끊어진 이 시대에 수석을 쓰다듬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문광과 근세부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저택으로 향하면서 수석을 가지고 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결국 영화 속 수석은 계급 사다리의 상징이다. 아직도 가난한 자들은 수석의 의미를 곱씹으며 계급 상승의 의지를 보이지만, 이 시대의 부자들은 더 이상 수석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수석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런 돌덩어리에다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심어놓고 요행을 바라는 주술을 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을 계획하는가
 

 
계급 상승 수단으로서의 수석. 따라서 수석의 주인은 기우다. 그는 물난리 와중에도 담배와 비상금을 챙기는 기정과 달리 수석을 우선 챙긴다. 그는 ‘얘가 자꾸 나한테 달라붙는 거’라며 수석이 가져다주는 계급 상승의 행운을 믿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가지고 문광을 찾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기택도 역시 수석을 귀하게 여기지만 기우만큼은 아니다. 술 한 잔 하면서 지긋이 수석을 바라보지만, 그 눈빛에는 일말의 의심이 존재한다. 수석의 힘만으로 부자가 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척박함을 인생의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덕분이다.
 
그도 한때는 계급 상승의 의지를 가지고 많은 일을 했었다. 대리기사도 했었고, 문제의 그 대왕카스텔라 가맹점도 했었다. 영화 속에 스쳐지나가는 기택의 집안 풍경은 수석의 시대, 온갖 것을 했던 이의 잡동사니이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반지하의 신산한 일상뿐이다.
 

 
기우가 위조한 재학증명서를 가지고 박 사장 네로 면접 가는 길. 아들이 내년에 이 대학을 꼭 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위조나 범죄가 아니라고 하는 말에 기택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내뱉는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이는 아들이 돈을 벌어 온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다행스러움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아들 역시 자신의 전철을 밟고 있음에 내뱉는 자조이기도 하다. 이미 계급이 고착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계급 상승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아들이 얼마나 안쓰럽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총체적 위기로 사면초가에 몰린 자식들이 다음 계획이 뭐냐고 묻자 그가 본심을 이야기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계획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된다, 인생은. 봐라, 누가 이 많은 사람이 오늘 떼거지로 체육관에서 잡시다 계획을 했었겠냐? 그러니까 계획은 없어야 돼.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잘못될 일도 없고.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다 상관없다 이 말이지.”
 
결국 기택이 수석을 기우만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이미 너무도 많은 좌절을 맛봤기 때문이다. 계급 사다리가 끊긴 사회. 그 속에서 기택은 잘 살려고 더 이상 애써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래봤자 쓸모없음을 알고 있다. 단지 내 앞에 닥친 현실에 순응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이며, 영화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꼬집고 싶은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영화의 마지막. 기우는 저택의 지하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기택을 꺼내기 위해 다시금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가 무계획이 가장 상수임을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 탓이다.
 
다만 영화는 처음으로 기우의 계획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는데, 그의 계획을 보며 가능성을 논하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과연 부자가 되어 저택을 구매하겠다는 기우의 계획이 그리 허황된 꿈일까? 정녕 그는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봉준호 감독이 묻는다. 당신은 계획을 세우고 살고 있는지, 아님 무계획을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