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 <돈>(감독 박누리), < 82년생 김지영 >(감독 김도영),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 <생일>(감독 이종언). 지난해 개봉한 여성감독들의 상업영화다. 순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시장에서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소폭 늘어났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13일 발표한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의 <한국영화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상업영화의 여성감독은 총 5명으로 전체 10.2%였다.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2017년에 0명, 2018년 1명(2.5%)과 비교하면 조금 늘었다.
 
영진위는 보고서에서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여성 감독이나 여성 주연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의 목소리가 커지고 가시화되면서 상업 영화 제작 및 투자 분야에서 여성 감독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중 < 82년생 김지영 >은 367만 8994명의 관객을 동원해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 중 가장 높은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다. 영진위는 “< 82년생 김지영 >은 여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 주연 영화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영화의 주제와 마케팅 전면에 내세워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5명 모두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각본가나 배우, 다큐멘터리 연출, 조감독 등으로 이력을 쌓아왔다. 영진위는 “다채로운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다양한 경력을 쌓아온 신인 여성 감독들이 첫 상업영화를 만들고 좋은 성과를 얻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저예산 독립영화 시장에서도 신인 여성감독들이 주목받은 것도 긍정적이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40개가 넘는 상을 받은 <벌새>(감독 김보라)는 14만 명이 넘는 국내 관객을 동원했다. <메기>(감독 이옥섭),<아워 바디>(감독 한가람), <보희와 녹양>(안주영). <선희와 슬기>(박영주),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등이 연달아 개봉했다.
 
영진위는 “10억 원 이하의 저예산 영화에서 비평계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여성감독들이 지난 5년간 꾸준히 등장한 것이 상업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여성 감독이 다수 등장하고 꾸준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것은 크게 수익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관객뿐만 아니라 투자자 및 제작자들의 여성 감독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편견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여성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 주인공도 여성이 될 확률이 높다. 지난해 실질 개봉작(일반적인 한국영화 투자-제작의 유형의 영화) 전체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22편 중 여성 주연 영화는 12편(54.5%)이었다. 남성감독이 연출한 147편 중 여성 주연 영화는 48편(32.7%)이었다. 영진위는 “(여성감독들의) 증가 추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꾸준하고 파격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 주연의 성비 불균형도 여전했다. 지난해 실질 개봉작 중 여성 주연(등장인물 크레디트첫 번째 혹은 두 번째)은 63명(37.3%)으로 2018년 62명(37.8%)과 큰 차이가 없었다. 상업영화만 놓고 보면 8명(18.6%)으로 2018년 6명(15%)보다 조금 늘었다. 제작 규모가 커질수록 여성 주연의 비중이 낮아졌다.
 
여성 주연 영화 중 가장 흥행 순위가 높은 작품은 정유미 주연의 < 82년생 김지영 >이었다. 크레디트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모두 여성인 작품이 제일 비중이 낮았다. 순제작비 10억 원 이상의 영화에서 <걸캅스>(감독 정다원), <미성년>(감독 김윤석), <감쪽같은 그녀>(감독 허인무), <언니>(영화 임경택), <신비아파트 극장판: 하늘도깨비 대 요르문간드>(감독 변영규),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였다. 하지만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으로만 놓고 보면 <걸캅스>가 유일했다.
 
반면 크레디트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남성인 경우는 28편(44.4%)으로 대조적이었다. 영진위는 “여전히 한국영화가 남성들이 중심인 서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영진위는 여성 주연 영화를 늘리기 위해서는 감독뿐 아니라 여성 각본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 개봉작 전체에서 여성 각본가가 쓴 31편 중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18편(58.1%)이었다. 반면 남성 각본가가 쓴 영화 111편 중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33편으로 29.7%에 그쳤다.(남·여 공동각본가인 영화 제외)
 
지난해 흥행 상위 30개 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13편(43.3%)였다. 벡델 테스트는 성평등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고 △서로 대화를 하고 △남자와 관련 없는 대화 등이다. 크레디트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모두 남성이 주연 영화는 17편이었고 이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4편(23.5%)에 불과했다. 크레디트 첫 번째에 여성의 이름이 올라온 영화는 5편(16.7%)에 그쳤다.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구출의 대상이 되거나 남성 집단에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스테레오타입화(고정관념) 되는지 조사하기 위해 실시한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서 흥행 상위 30편 중 13편(43.3%)이 해당했다. 테스트에는 총 7가지 질문 중 1개 이상 해당한 경우였다. ‘여성이 전적으로 남성의 구출 혹은 구원에 의지하는가?’ ‘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는 질문에 해당한 사례가 많았다.
 
‘여성의 행동이나 결단이 설득력 없이 소개되며 남성을 곤경에 빠트리는가?’, ‘돌봄이 설득력 있는 서사 없이 여성의 당연한 의무나 본성으로 부여되는가?’ ‘여성이 일차원적 이성애 로맨스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가?’ ‘과도하게 성애화된 자극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 ‘자기 서사 없이 (범죄 등의) 피해자로만 전시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