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 신화에 살짝 가려지긴 했지만 르네 젤위거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녀의 작품을 좋아한 팬들에겐 무척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하다. 1996년 <제리 맥과이어>를 시작으로 <너스 베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카고 >, <콜드 마운틴> 등 2000년대 중반까지 젤위거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지속된 수년 여의 공백 이후 활동을 재개했지만 예전 같은 영광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칫 잊힌 과거의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그녀에게 <주디>는 제2의 전성기를 마련해줬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각 영화상 여우주연 부분을 휩쓸다보니 아카데미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영화 <주디>(2월 26일 개봉예정)는 1930-1940년대 할리우드 은막 스타이자 1950~1960년대 공연 무대를 휩쓸었던 배우 주디 갈란드(1922~1969)의 생애 마지막 6개월을 중심으로 그려진 전기물이다. 요즘 영화팬들에겐 그저 팝 고전 ‘Over The Rainbow'(오즈의 마법사) 원곡 가수 정도로만 인식되는 인물이지만 주디 갈란드는 미국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전설적 존재이기도 하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마찬가지로 배우와 가수 양쪽에서 성공을 거둔 그녀는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력을 겸비하며 아역시절 부터 인기 스타가 되었지만 부모, 영화 제작자 등 어른들의 탐욕 속에 각종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피폐해진 삶을 살았고, 그런 주디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비극적이었다.  

주디 갈란드 최고의 걸작 음반 
 

 
1950년 이후 죽기 전까지 주디 갈란드는 20년 사이 고작 5편의 영화(목소리 출연 제외)에만 출연할 만큼 사실상 할리우드에선 멀어진 존재였다. 대신 침체된 연예 활동의 돌파구가 되어 준 것은 가수 활동이었다. TV쇼 무대를 비롯해서 연일 매진시킨 각종 극장 공연은 주디 갈란드에게 제2의 전성기를 마련해준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완성도 및 상업적 성공을 거둔 건 1961년 발표된 < Judy at Carnegie Hall >이었다.

그녀의 상당수 음악 작품들은 LP 이전 시대의 음반 매체인 78회전 SP가 다수를 차지하기에 흔히 말하는 인기 순위, 빌보드 차트에선 주디 갈란드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이 음반 만큼은 예외였다.  

2장짜리 LP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13주 연속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면서 골드레코드(50만장)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이듬해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부문을 비롯한 총 4개의 상을 휩쓰는 쾌거를 만끽했다. 당시의 경쟁작들이 지금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트랙 등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그래미 최고 부분에 해당하는 ‘올해의 음반’상을 차지한 최초의 여성 음악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이후 세월이 흘러 지난 2003년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의회 도서관에 헌액되기도 했다. 

60년 전 작품 답지 않은 빼어난 소리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 Judy at Carnegie Hall >는 유서깊은 공연장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작품이다. 모노와 스테레오 음반이 혼재하던 시절인 만큼 요즘처럼 생생한 현장 녹음이 쉽지 않은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근 60년 전 작품 답지 않은 빼어난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모트 린제이가 지휘하는 대형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구성된 세트 리스트들은 주디 갈란드가 평소 애청하는 스탠다드 재즈 + 팝 음악 위주로 짜여졌다. 

‘Over The Rainbow’를 비롯해서 많은 재즈 음악인들이 재해석하고 연주하는 ‘Come Rain or Come Shine’, ‘San Francisco’, ‘That’s Entertainment’, ‘Stormy Weather’ 등의 명곡들은 주디 특유의 중음역 보컬과 더불어 청중들의 마음을 2시간 가까이 쥐락펴락 한다. 각 노래 사이엔 관객들을 향해 말하는 그녀의 유머 넘치는 이야기도 등장해 공연 실황 다운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음반 속지 사진과 목소리만 얼핏 접한다면 50대 이상 관록의 가수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이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39살에 불과했다. 이는 이른 나이에 세파에 찌든 나머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비운의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 끝자락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전설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작 역할
 

 
카네기 홀 공연의 대성공을 계기로 주디 갈란드는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쇼 프로그램(CBS)을 방영할 만큼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오랜기간 인생을 짓밟았던 약물 중독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던 호주 시드니 공연은 술과 약물에 취해 빚어진 지각사태로 인해 대참패를 맞이했고 세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이혼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 속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주디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녀가 남긴 영화 <오즈의 마법사>, <스타탄생> 등을 비롯한 걸작들은 할리우드 및 팝 음악계의 전설이 되었다.  

< Judy at Carnegie Hall > 속 중요 곡들은 <주디> 사운드트랙 음반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노래하는 이는 주디가 아닌 르네 젤위거 그리고 듀엣 파트너로 참여한 샘 스미스와 루퍼트 웨인라이트지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선 < Judy at Carnegie Hall >는 영화, 그리고 주디 갈란드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입문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영화의 정식 국내 개봉에 앞서 꼭 들어보길 감히 추천해본다. 

[주디 갈란드 TMI 하나] 
유명 공연 프로모터이기도 했던 주디 갈란드의 세 번째 남편 시드니 루프트는 당시 호주와 홍콩을 오가며 활동하던 어느 무명 음악인을 발굴해 주디의 오프닝 가수 역할을 맡기게 된다. 그의 이름은 피터 앨런(1944~1992)으로 훗날 주디의 큰 딸이면서 인기 가수 겸 배우 라이자 미넬리의 첫 남편이 되었다. 비록 호주에서의 인기 만큼 미국 시장에선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가 작곡한 ‘I Honestly Love You'(올리비아 뉴튼 존), ‘Arthur’s Theme(Best That You Can Do)'(크리스토퍼 크로스)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특히 후자로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다.

 

 
[TMI 둘] 영화 <주디>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카네기홀 공연을 전곡 순서 그대로 오마주한 자신의 라이브 앨범 < Rufus Does Judy at Carnegie Hall >를 2007년 발매한 바 있다. 여기엔 주디 갈란드의 딸 로나 루프트가 초대가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TMI 셋] 주디 갈란드(아역상),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자 영화 감독 빈센트 미넬리(감독상), 딸 라이자 미넬리(여우주연상)은 아버지+어머니+자녀 등 가족 3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